——
시미즈 콴타 清水 幹太(PARTY Chief Technology Officer)
도쿄대 법학부에 재학할 당시(추후 중퇴)부터 프로그래머/디자이너로서 활동했다. 2006년에 img src에 입사한 이후엔 Technical Director로서 웹사이트부터 영상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콘텐츠 기획/제작을 담당했다. 2011년, 크리에이티브 랩 ‘PARTY’를 설립하였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Chief Technology Officer로서, 인터랙티브를 중심으로 장르를 불문하고, 높은 기술력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크리에이티브를 담당하고 있다. 2013년 9월부터 PARTY NYC로 부임했다. 칸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스파이크 광고제 등 국내외에서 다수 수상했다.
——
이 칼럼에 대해서…
PARTY의 뉴욕 지사를 세우고, 갑자기 뉴욕이라는 전장 한가운데에 뛰어들게 된 필자가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는지, 매일 갑작스럽게 예상을 벗어나는 일들에서 어떻게 살아남는지, 애초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억울한 일도 기쁜 일도 모두, 나름대로 거센 파도가 높게 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생기는 체험에 대해 전한다.
——
뉴욕 돌격기 : PARTY NYC의 도전
1회 : 1년 전엔 상상도 못했지만, 뉴욕에서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 출처 : AdverTimes (일본) http://www.advertimes.com/20131227/article141164/
- 게재일 : 2013년 12월 27일
- 작성 : 시미즈 퀀타 (清水 幹太, PARTY Chief Technology Officer)
- 한글화 : 강은진 Mika EunJin Kang https://alleciel.com/mika/
——
여러분, 안녕하세요. PARTY의 시미즈 퀀타라고 합니다.
이번에 영광스럽게도 칼럼 집필 의뢰를 받게 되었는데요, 그건 간단히 말하자면 ‘해외에서 크리에이티브 일을 하면서 경험할 것을 리포트해주길 바란다’는 거였습니다.

PARTY NY 지사에서 보이는 풍경
네, 저는 지금 뉴욕에 자리를 잡고, 뉴욕을 거점으로 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부터였으니까 아직 3개월 정도네요. 솔직히 좌우도 모르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여전히 좌우도 모를 타이밍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에 갑자기 ‘PARTY의 시미즈 퀀타입니다’라고 이름을 소개했는데요, 모르시는 분도 많을 거 같아서,우선은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입장에서,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게 좋겠네요.
아마 뉴욕에서의 일상을 쓰면서 점점 자신의 특이함에 뿌리를 둔 시점이 나올 거 같습니다. 얘기를 하자면 길어지므로 되도록 짧게 정리하겠습니다.
지금 현재 37살이며, 도쿄의 진학교에서 동경대 법학부에 들어갈 때까지는 좋았습니다만, 대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이런 저런 일들이 있어서 편집 디자이너 겸 DTP 오퍼레이터가 되어 여러 잡지의 레이아웃이나 활자 등을 프리랜서로 조금 진행했습니다.
새살림을 꾸리고 ‘슬슬 제대로 생계를 유지해야지’ 싶었던 29살의 타이밍에 여러 일이 있어서 동경하고 있던 디지털 제작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 때까지의 경력과는 그다지 관꼐 없는 디지털 크리에이티브의 세계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왜인지 프로그래밍을 본격적으로 했고, 한편으로는 광고 제안을 하거나, 디렉션을 하게 되면서 이것 저것 만들던 중, 어느샌가 광고업계의 대단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모인 ‘PARTY’라는 팀에 창립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하게 되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전개가 되었습니다. (저는 PARTY 창업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프로덕션 출신입니다.)
직함은 ‘Chief Technology Officer’입니다. ‘스토리텔링과 기술을 합체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걸 표방하는 PARTY의 테크놀로지 부분의 책임자입니다만, 저는 무엇이든 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프로젝트 전체를 도맡기도 하고, 테크니컬 디렉터로서 기술적인 검증이나 관리를 맡기도 하고, 프로듀서 적으로 사람을 모으기 위해 분주할 때도 있고, 프로그래머로서 실제로 개발을 하기도 합니다. 때론 디자인을 하는 적도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 드렸던 경력과 같이, 10년 전의 저는 10년 후에 이런 생활을 하고 있을지 1mm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되돌아보니 막살아온 인생이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냉정하게 지난 10년을 되돌아 보니 ‘요약하자면 나는 쉽게 질린다’는 게 모였습니다. 그런 제가 10년 전의 자신을 놀라게 하고 결국 최근 취한 행동이 ‘뉴욕에서 회사를 세우자’인 것입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렀는지는 차츰 이 칼럼을 통해 설명하려고 하며, 어쨌든 PARTY의 뉴욕 지사를 세우고,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이사하는, 10년 전은 차치하고서라도 1년 전의 자신이 상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360도 카메라로 찍은 PARTY NY 사무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왜 이렇게 되었지’라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외람되지만, PARTY란 회사는 일본에 창립된 당시부터 감사하게도 화제가 되어 이후에도 다양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세상에 선보이고 다양한 광고제에서 상을 받는 영광을 누려, 굉장히 화려하고 반짝반짝한 스타집단적으로 보이는 거 같습니다. (실은 이런 저런 일들이 있지만요.)
하지만, 여기 뉴욕에서는 당연하게도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같은 광고업계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클라이언트 기업은 PARTY를 모르는 사람들 뿐이며, 살짝 업계 밖으로 나가면 저희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동양인입니다. 빈주먹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벤처 기업으로라도 좋으니, 갑자기 뉴욕에 가서 회사를 한다는 무대포라 해도 될 정도죠. 나쁜 예이긴 하지만, 갑자기 가벼운 복장으로 후지산을 등정하려고 해서 빈축을 사는 젊은이 같은 무대포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칼럼의 이름도 ‘체재기’가 아닌 ‘돌격기’입니다.
여러 가지로 복이 있어서 갑자기 뉴욕이란 전장의 한가운데에 뛰어든, 쉽게 질리는 남자가 어떻게 뉴욕에서 일을 하는지, 매일 일어나는 아득히 예상에서 벗어나는 일들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 애초에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잃고, 무엇을 만들지… 이 칼럼에서는 그런 와중에 생기는 체험에 대해 쓰고, 독자 여러분이 즐겨주시며, 잘되면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전체 12회를 격주 연재하긴 하지만, 따스한 눈으로 봐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부디 잘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