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산길을 만나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각자의 지향성, 즉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낸 뒤 넓은 세계 속에서 자신에게 적합한 장소를 찾아가 거기서 살 수 있는 자유…너무도 멋진 세상이다.”
2008년, 현재의 회사에 입사했을 때에 [웹 진화론 2]란 책이 출간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실리콘밸리’를 90년대부터 경험한 ‘우메다 모치오’가 2006년에 낸 [웹 진화론]이란 책의 후속작으로, 원제는 [웹 시대를 간다]이며, 우리나라엔 1년 후인 2008년에 출간되었다.
‘대변혁의 시대, 새로운 삶의 방식이 태어난다’를 부제로 달고 있는데, 어느 날 이 책 속의 ‘거친 산길’이란 표현을 보고 내 생각이 났다는 학과 선배의 얘기를 듣고, 호기심에 접하게 되었다. 한 달 만에 전하게 된 2편에서는 [웹 진화론 2] 속에서 인상 깊었던 문구들과 함께, 내가 어떻게 ‘학습의 고속도로’를 타면서 ‘거친 산길’로 크리에이티브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소개하려 한다.
“인터넷에 형성된 학습의 고속도로에는 현실 세계의 물리적 거리와 핸디캡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특정 분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분야에 얼마나 몰두할 수 있는지’, 등 실로 간단한 경쟁 원리만이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의욕만 있다면 끝없이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펼쳐진 것이다. “
나는 좋아하는 것에는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빠져들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은 고집스럽게 외면하는 삶을 살았다. 이런 방식이 (크게 욕 먹지 않고) 존중 받기 위해서는, 남들이 인정해 줄 수 있을 정도로 그 좋아하는 걸 탁월하게 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4남매 사이에서 첫째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했던 거 같다. 강력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었지만, 과외나 학원 수강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해 스스로 학습하는 버릇이 들었고, 영어/일본어/HTML 코딩/포토샵 등을 교재를 사거나 인터넷의 정보를 활용해서 학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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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가장 적합하게 활용하기
“자유 경쟁의 무대가 마련된 인터넷 상의 지식 세계는 몰두하고자 하는 분야에 대한 애정의 깊이와 몰두 정도, 근면의 강도가 성패를 좌우한다.”
지금의 나를 형성한 가장 큰 기질은 ‘호기심’과 ‘꾸준함’이었다. 손으로 혹은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 서투르고, 자동차가 맞은 편에서 오면 자동차가 오는 쪽으로 몸을 향하는 위험한(?) ‘뇌’ 덕분에, 꾸준히 파고들 시간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빨리 향상될 수 있는 걸 파고들었다. (물론 드로잉이나 운동 능력도 내가 그런 식으로 파고들었다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부여된 자원은 ‘시간’ 뿐이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자원을 자신의 지향성과 적성에 맞는 영역에 유감 없이 쏟아 부으며 빛나는 삶을 만들어 내야 한다. 앞으로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시간이라는 자원을 자신에게 가장 적합하게 사용하는 행동 양식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났던 그 해, 이직을 하고 이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는 아직 내가 가진 가능성을 어떻게 펼칠지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었고, 그 때 이 ‘거친 산길’을 만나게 되었다.
“정체 구역에 접어들었다면 두 가지 선택 방안이 있다. 하나는 전문성을 더욱 높여 정체 구간을 돌파하는 길이다. (높고 험난한 길) 다른 하나는 정체 구간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그간 갈고닦은 전문성을 활용하면서 개인의 종합적인 능력을 활용하는 유연한 삶을 사는 것이다. 두 번째 선택은 안내판도 없고 제대로 포장도 안된, 동물이나 다니는 산길이란 의미에서 ‘거친 산길’이라 표현한다.”
나이 차이가 나는 ‘어른’들을 만나다 보면, 젊은 세대들처럼 어릴 적부터 인터넷을 하면서 자라지 않았기에 디지털에 대한 것은 의도적으로 학습을 하고 이해를 해야 하고, 정보가 너무 많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 정신 없다고들 하신다. 반면 젊은 세대들은 굳이 배우지 않아도, 새로 나온 기기를 봐도 금방 쓰고, 빨리 이해한다고 부러워하셨다.
“젊은이들은 젊음의 장점인 뛰어난 정보 해독력을 활용해 거친 산길을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다. ”
“오늘날의 정보 해독력이란, 무한한 정보 속에서 유한한 자신의 선호 분야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방대한 정보 속에서 자신에게 소중한 정보를 끊임없이 찾아내는 능력이다. 요즘 젋은이들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있으며, 의식적으로 자신만의 정보 처리 능력을 활용한다.”
그렇기에 ‘디지털’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은 ‘전통 광고’를 해 온 분들에 비해서, 더 빨리 이해하고 더 정확히 챙길 수 있다는 건 신입 사원이라도 강점이 된다.
그리고 이와 마찬가지로, 본인도 모르는 ‘디폴트 탑재 스펙’이 하나 또 있는데, 바로 타인에게서 내가 필요한 정보를 얻는 능력이다.
“젊은이들의 또다른 무기는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두뇌(=타인의 뇌)’를 철저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등이 발전하면서, 정보 해독력이 높은 젊은이들은 항상 수십 명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상태에서 조언하거나 조언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
작년, 부산 여행을 갔을 때 페이스북에 댓글로 ‘설빙’이란 빙수 맛집에 가보라는 추천 덕에, 인절미 빙수를 처음 맛보았고, 2번째로 다시 가서 또 다른 지점 ‘설빙’을 가서 포장을 해서 부산역에서 KTX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먹었다.
비록 다른 공간에 있더라도, 전파가 있는 곳에서는 타인과 계속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정보/경험/생각을 나누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다. 해외로 여행을 가더라도 페이스북으로 사귄 친구 혹은 업계 사람을 만나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더욱이 요즘은 카페나 클럽, 커뮤니티, 페이스북 그룹 뿐만 아니라, 에어비앤비, 집밥 같은 새롭지만 맞을만한 사람들을 색다른 방식으로 만나볼 수 있는 곳들도 늘고 있다. 밴드처럼 기존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는 서비스도 있고 말이다.
혼자인 것 같아도, 혼자이지 않은,
그렇기에 자신이 구하는 만큼 더욱 즐겁게 성장할 수 있는 시대
그렇기에 네이버에서 검색을 해서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자료를 찾는 친구들을 보면 무심코, ‘남이 본 걸 통해서 보지 말고, 네가 직접 구글링하고 확인하라’고 하고 싶어진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려둔 것은 그 사람이 받아들인 것을 올려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렌즈를 통해서 보게 되고, 자신이 직접 받아들이고 생각해 보는 비중은 낮아진다. 처음엔 도움을 받더라도, 자신이 직접 찾아내고, 살펴보고, 더 깊이 조사해 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들을 계속해서 늘려간다면, 진짜 ‘내 것’이 되는 게 더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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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욕심이 나는 것은 ‘내 것’, ‘내 생각’이다.
‘잘했다더라’, ‘어떻게 했다더라’하는 표면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고, 세계의 최고 크리에이터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크리에이티브를 하고 있고, 어떻게 크리에이티브들이 탄생하고 있는지, 그 뒷면을 조사하고 연구하고, 그게 더 멋진 크리에이티브가 탄생하는데 실제로 영향을 주는 씬에 등장하고 싶다.
그래서 이 연재는 더더욱 내게 조심스럽고, 어려운 도전이었다. 1편을 올리고 1달 동안, 이후의 성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계속 찾았다. 그 모든 소스는 내가 보내는 모든 시간 속의 경험과 정보 속에서 얻고 있으며, 계속해서 변하고 진화하고 있는 거 같다.
‘디자인을 전공했기에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 ‘크리에이티브하면서도 논리적이고 인사이트와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거친 산길은 편안한 길은 아니다. 하지만 ‘크루즈’를 타고 곱게 여행하는 삶보다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살리는 ‘해적’ 같은 삶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런 삶을 탐내기 시작한 것은 AKQA의 CCO인 이나모토 레이의 글을 읽고 나서였다.
내가 태어난 해인 1983년, 어느 회사에 ‘해적’ 깃발이 걸렸다. 사내에서 따돌림 받던 제품 개발 부문에서 ‘해군에 들어갈 바에는 해적이 되는 게 낫다’는 굉장히 헝그리하고 반항적인 의지를 표명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 그 그룹의 리더가 새로운 제품을 위한 광고를 슈퍼볼 때 처음으로 공개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전설적인 광고인 [1984]를 공개한 것이다.
이후로 매년 초, 전 세계의 광고인들은 ‘슈퍼볼 광고’에 주목했다.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지상 최대의 TV광고 제전으로 만들어버린 전설적인 광고를 만들어낸 ‘해적’들처럼, 크리에이티브 계의 원피스를 찾아 거친 산길을 누비는 ‘해적’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