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i Inc. 하라노 모리히로] 10번째 칸 : 광고제용 ‘Social Good’은 기분 나쁘다. 그저 들이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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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칸 / 10年目のカンヌ

모리히로 하라노 CD에 대해서는 [월간 IM 인터뷰]를 참고

모리히로 하라노 CD에 대해서는 [월간 IM 인터뷰]를 참고하길~
직접 제보해 주신 이예근 편집장님께 감사를!

※ 참고 : [월간 IM 인터뷰] 정직하게 정진하는 크리에이터 모리히로 하라노

 

올해로 칸에 온지 10번째인 거 같다. 그 중 3번은 심사위원으로 왔다. 나는 디자인 / TITANIUM AND INTEGRATED / 이노베이션의 심사위원을 경험했다. 여기선 2가지 정도 다루려고 한다.

 

칸은 ‘광고회사들의 독점적인(exclusive) 축제’다. 여기서 계속되는 대화 / 회식 / 파티는 기본적으로 모두 광고업계 동료들의 것이나, 그저께 밤에는 여기선 보기 드문 직업을 가지신 분과 식사할 기회를 얻었다. 어느 유명한 언론사의 기자 분, 즉 저널리스트였다.

그녀는 물론 광고제에 온 게 처음이었다. 전날 밤에 본 수상식이나 수상작품에 대한 감상을 들어보니, 놀라운 답변을 했다. ‘기분 나쁘다’고.

“물론 멋진 아이디어와 감동적인 것도 많았다”고 했지만, 그녀가 ‘기분 나쁘다’고 느꼈던 것은 ‘Social Good’적인 것이었다.

저널리스트의 사명은 세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를 널리 전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들 광고쟁이들이 ‘Social Good’에 연관되기 훨씬 이전부터, 그들은 사회 / 세계 / 지구의 문제에 시선을 두었다. 그걸 해결하려는 개인 혹은 집단의, 역사적으로 ‘그런 성향의 투쟁’을 계속 봐온 것이다.

그런 시점에서 보면, 수상하기 쉬울 거라는 시점에서 양산된 광고제용 ‘Social Good’은 ‘기분 나쁘다.’ 이건 나도 무척 공감한다.

 

작년에 이노베이션 라이언즈의 심사를 할 때 봤던 코카콜라의 “Small World Machines”(인도와 파키스탄의 사람들을 실시간 영상으로 이어준 자동판매기)를 예를 들어 본다. 케이스 스터디 영상을 자세히 보면, 자동판매기 옆에 있는 코카콜라 로고는 현지어로 되어 있는데, 자동판매기의 스크린에 비추어진 언어는 모두 영어이다. 코카콜라가 현지어로 로고를 만드는 건 그게 현지인에게 보다 연관성이 높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왜 스크린의 메시지도 현지어로 하지 않았을까? 나는 다른 심사위원에게 이 점을 지적하고 ‘그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게 현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 우리들 심사위원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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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애초에 왜 ‘인도와 파키스탄’이란 말인가? 왜 ‘미국과 이라크’가 아닌가? 아마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해하기 쉽고, 심사위원이나 칸의 관중들이 동정하기 쉬운 ‘불쌍한’ 제3세계이기 때문이리라. 올해 Andy의 심사에서 같은 작품을 봤을 때 나는 “이런 데 출품하기 위해서 ‘The Best Use of 불쌍한 사람들’이란 카테고리를 만들면 어떨까”하고, 비꼬며 제안했다.

그런 건 정말 ‘기분 나쁘다.’ ‘광고제에서 수상하기’ 위해서, ‘불쌍한 사람들’을 찾아내서, ‘2분 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든다. 눈이 부자유한 사람, 고치기 어려운 병에 괴로워하는 사람, 인구가 적은 마을, 빈곤과 기아에 괴로워하는 나라, 거기에 사는 사람들, 특히 어린이/여성/노인 등 약자 등. 과연 ‘크리에이티브의 축제’인 만큼, 출연자(라인업)들이 다양하고 풍성하다.

물론 그 중에서는 크리에이티비티의 힘으로 과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고, 그 문제를 표면화하는 데 큰 공헌을 한 것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의 수상작품을 이런 시점에서 되돌아봤을 때 과제를 진정 성실하고 정직하게 애정을 가지고 대처한 게 얼마나 있을까?

“저널리스트에게 ‘칸의 심사결과’를 심사하라고 하면, 칸은 금상을 탈 수 있을까?” 이게 내가 쓰고 싶었던 첫번째이다.

 

2번째 테마는 “들이대”란 것이다.

매년 칸 시즌이 되면 여러 사람들이 ‘칸 론(論)’을 펼친다. 나도 심사위원을 했던 해에는 심사보고회 같은 게 있어서(어째선지 덴츠(電通)와 하쿠호도(博報堂)와 ADK에서만 주최한다.), 거기에서 ‘올해의 트렌드’나 ‘케이스 스터디 영상 만드는 법’ 같은 조언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특히 젊은 사람들, 이후의 칸에서 수상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진정 하고 싶은 조언은 ‘들이대’라는 것이다.

‘인류 공통의 인사이트를 노려라’라던가, ‘케이스 스터디 영상은 간단하고도 감성적으로’라던가, ‘문제를 해결하는 힘(문제 해결력)보다도 문제를 발견하는 힘(문제 발견력)의 시대’라던가, 그런 건 솔직이 ‘어찌 되는 상관 없는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말이다. 진정으로 크리에이티브해지고 싶다면, 소비자(혹은 사회)의 과제 해결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위해, 자신의 미학과 철학에 기반해서 ‘이게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는 걸 묵묵히 계속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칸의 트렌드 따위는 의식할 필요가 없고, 의미도 없다. 의식하면은 그건 이미 1년 전의 트렌드를 뒤쫓는 것 뿐이니까.

도리어 자기 자신의, 자신의 독자적인 새로운 사고 방식을, 칸의 심사위원들에게 ‘들이댈’ 작정으로 하는 게 나은 거 같다. 실은 ‘들이댔을’ 때, 심사회장은 대단히 들끓고, 결과에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작품을 응모하기에 최적인 카테고리가 없다 싶으면, 그건 가장 ‘좋은 징조’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실제로 그걸 경험했다. drill / PARTY / Mori (もり) 등 세 회사를 거치면서 내가 일관된 테마로 삼은 것은 ‘창조적인 제품을 낳는 팀과 리더십’이었다.

LICCA WORLD TOURに를 시작으로, EPOS: 100 DESIGN CARDS, Honda Green Machine, Menicon: Magic, 숲의 실로폰(森の木琴), PARTY, Hotel Japan 등 항상 같은 걸 할 작정으로, 뛰어난 광고 크리에이티브를 만드는 것 이전의 얘기 – 제품 그 자체나 판매 방법의 혁신, 시장 포지셔닝을 바꾸는 브랜드 시스템의 디자인에 관심이 있었고, 그걸 역행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팀을 만들어서, 클라이언트와 크리에이티브 양쪽에 공헌할 수 있는 리더십의 자세에 관심이 있다.

 

10년 전에 drill을 창립했을 무렵, 칸에 응모하려 했을 때 가장 난감했던 것이 자신이 ‘들이대고 싶은’ 것을 출품할 카테고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칸은 미디어의 확장에 대응하기 시작했었고, 내가 목표로 하고 있었던 건 ‘크리에이티브 이전의 것’을 작업하고, 제품 그 자체의 이노베이션이나 디자인, 브랜드 시스템의 디자인에 대응하는 카테고리는 없었다. (솔직히 지금도 모두 갖추어져 있지는 않다.)

그래서 매년 칸에 와서 GALA 파티에서 (칸의 경영자인) 테리와 필립에게 이노베이션이나 제품 디자인, 브랜드 시스템 등을 평가하는 카테고리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얘기를 계속했다. 아마도 그런 얘기를 한 사람은 나 외에도 많았으리라. 그 후로 몇 년이 걸려서 그런 카테고리가 계속 늘고 있다. 재작년에는 티타늄 / 작년엔 이노베이션 심사위원으로 대단한 실적도 없는 내가 일본인으로서 처음으로 선출된 배경에는 칸과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했기 때문인 거 같다. 테리는 ‘기다렸죠’하는 느낌의 심사위원 의뢰 메일을 받았다.

이런 건 작품의 수상과는 좀 다르지만, 계속 ‘들이대서’ 자신의 생각과 시대나 칸이 싱크로하는 순간을 드디어 맞이한 하나의 예라 생각한다.

 

‘숲의 실로폰(森の木琴)’은 카피도 나레이션도 없고, 인간의 감정이나 드라마도 그리지 않는다. 특별히 컬러풀하지도 않은 수수한 영상으로, 당시의 칸의 필름이나 사이버의 문법 / 문맥에서는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그걸 해내고 ‘들이댔기’ 때문에 생각치 못하게 수상을 했다.

 

작년의 “Dumb Ways to Die”나 스가노(菅野) 씨의 “Sound of Honda” 등은 ‘들이대는’ 것의 중요성을 나타내며, 더욱 위대하고 멋진 사례라 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작년까지의 ‘칸 트렌드 해설’로는 설명할 없는 작품으로, 만드는 당사자들도 트렌드나 문맥을 계산하고 만든 게 아닐 것이다. 이렇게 ‘들이댈 수 있는’, 개성적인 작품을 볼 수 있기에 칸이 재미있는 것이며, 트렌드나 문맥에 맞는 작품 뿐이라면 ‘Creativity’를 내건 새로운 간판이 빛 좋은 개살구(양두구육(羊頭狗肉))가 될 것이다.

 

뒤쫓는 게 아니라, ‘들이대는’ 것.

나는 올해 동상 하나과 Shortlist 하나를 받아, 수상 결과는 썩 신통치 않지만, 모든 출품작에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들이댄’ 결과 올해의 심사위원들에게 여운을 남기지 못했다고 여긴다. 물론 반성해야 할 점도 있다. 또한 상을 받으면 물론 기쁘고, 수상한 팀이 주고 받는 술도 정말 맛나지만, 그렇다고 이를 위해 내가 만드는 걸 ‘트렌드’에 맞추거나 혹은 위선적인 ‘Social Good’에 편승하는 건 주객이 바뀌는 거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고, 그렇게 해서 수상할 정도로 만만하지 않다.

앞으로도 내가 좋다고 믿는 것, ‘들이댈 수 있는’ 것만을, 사랑 받아 마땅한 우리 팀과 함께 만들고 싶고, 내년에도 ‘들이댄’ 걸 찾으러 또 칸에 오려 한다.

마지막으로 올해도 일본에서는 많은 수상작이 나왔다. 특히 Young Lions에서 약진했다는 게 정말 멋지다. (만날 수 있다면 달려 가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상자 모두에게 경의를 담아 축하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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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토끼굴을 넘나들며, 영감과 인사이트를 발굴하고 전하는 콘텐츠 디렉터/콘텐츠 마케터